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게야무라 로쿠스케 (문단 편집) == 개요 == 毛谷村六助 [[센고쿠 시대]]의 무장. '''기다 마고베'''(貴田孫兵衛)[* 혹은 木田孫兵衛라고도 한다. 실제로 그의 묘라고 알려져 있는 비석에는 이렇게 적혀져 있다. 貴田孫兵衛는 [[일본어 위키백과]]의 표기.]라고도 한다. [[가토 기요마사]]의 가신이며, 조총병 40명을 이끌고 가토의 부장으로 종군하였다. 바로 '''[[논개]]와 같이 놀다 물에 빠져 죽었던''' 그 왜장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다만 논개와 함께 죽었다는 설도 있지만 오랑카이라는 곳에서 전사했다든가[* 바로 그 [[오랑캐]] 맞다. 조선말 오랑캐를 일본식으로 음차한 것으로 [[함경도]] 근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로 보아 이 설에 따르면 게야무라는 [[북관대첩]]에서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혹은 고향으로 돌아와 제 명을 살고 죽었다는 설도 있다. 그만큼 그의 생애와 죽음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밝혀지지 않아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인물. 실제로 일본 학계에서는 논개와 죽었다는 설은 단지 전설일 뿐이라고 정하고 있으며, 나머지 설들도 정설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한국 학계에서도 이 게야무라에 대해 역사적으로 증명할 길이 없다. ||<#ffffff,#1f2023> [[파일:hontai_8.jpg|width=330]]|| ||<#ffffff,#1f2023>게야무라의 묘. 木田孫兵衛墓라고 표기되어 있다.|| 다만 귀향하고 천수를 누리고 죽은 설의 경우에는 [[오이타현]]에 기다 마고베에(木田孫兵衛)의 묘지가 있고 그를 기리는 비석이 있다. 그런데 이 비석도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라 후술할 가부키로 인해 이름이 알려진 후에 세워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논개설에서는 왜군의 총대장이었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2차 진주성 싸움에서 당시 왜군의 총대장은 [[우키타 히데이에]]이며 또한 야사에서만 나왔을 뿐 정사에서는 언급이 되지 않았던 인물이다. 게다가 그 전투에서는 임진왜란 치고는 의외로 거물인 [[다테 마사무네]]가 참전한 전투였는데 그 '''마사무네를 이런 듣보잡이 휘하에 두었다는 것'''은 참으로 믿기 어렵다. 이로 보았을 때 게야무라의 직책은 높게 잡아봤자 부사관 내지 하급장교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로 따진다면 잘해봤자 [[중위]]다. 실제로 진주성에 있는 논개비 뒷면에 게야무라가 왜군 총지휘자라는 기록이 새겨져 있었으나, 학계의 비판으로 인해 진주시와 회의 끝에 2004년에 논개비 뒷면을 아예 깎아버렸다. 학계의 주장은 '게야무라 로쿠스케'란 이름은 '게야무라' 가문 출신의 서민 '로쿠스케'라는 뜻으로 이러한 자가 장군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